[환각 이미지와 우리 세대의 삶]
우리 세대는 어느 순간부터 묘한 환각에 시달려왔다. 나는 그 환각의 이름을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라 불러왔다. 우리 세대는 최악의 양극화에 시달리는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준화된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 이를테면 한편에는 학자금이라든지, 장래 얻게 될 아파트라든지, 이미 공고해져버린 상류층에서의 삶이 보장된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반대편에는 학자금 대출을 짊어지고, 서울 진입은 인생의 시작부터 난관이고, 결혼과 출산은 아득한 현실로만 느껴지는 누군가가 있겠지만, 두 사람이 누리는 삶에 묘한 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세대라면, 이 시대의 청춘이라면 마땅히 누리는 것들, 이른바 '핫한' 것들을 향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를 가장 깊은 우울로 떨어뜨리는 때는 언제일까. 그 것은 내 삶에 어떠한 화려한 이미지도 없는데, 가까운 친구들의 SNS나 프로필 사진 등이 온갖 화려한 이미지들로 치장되어 있는 걸 볼 때일 것이다. 그런 사진 같은 것을 볼 때 급속도로 우울한 마음이 들고, 스스로도 어서 그러한 ‘이미지’에 속하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삶을 선택한다는 관점]
우리는 소비자로 자랐고, 세상은 우리가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중요한 것은 제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훌륭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어느 때건 즉각적으로 ‘행복의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분열로]
상향평준화된 이미지 혹은 환각 이미지 속에서의 삶이란 분명 우리 세대가 지향하는 삶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도 완전한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삶은 누린 다음에는 증발해버리는 삶, 하나를 좇고 나면 금세 다른 것을 좇아야 하는 삶, 하나의 이미지를 얻고 나면 다시 다른 이미지를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다.
내 삶의 주된 시간이란 대부분 그런 ‘이미지’가 없는 삶이고, 그저 잠깐잠깐만 그런 이미지를 누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삶의 대부분은 무미건조한 회색 권태로 뒤덮여 있고, 술을 마시는 순간에만 웃을 수 있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을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다.
[선의의 공동체를 꿈꾸며]
우리의 삶은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쌓아가는 과정 같지만, 실은 더 많은 결핍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 결핍의 홍수 속에서, 누가 더 자신을 가까스로 유지하는가 하는 경쟁이다.
다들 열심히 머리를 굴려 인생을 고민한다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선의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극복해야할 것은 선의를 미루고 있는 현재일 뿐이다.
저자: 정지우
읽은 날짜: 3월
정리 날짜: 10월 18일
- 저자
- 정지우
- 출판
- 한겨레출판사
- 출판일
- 2020.01.20
'고독한 독서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부러 거절당하는 사람이 있다?! <거절당하기 연습, 지아 장> (0) | 2020.10.24 |
---|---|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2020 BEST 책추천) (0) | 2020.10.22 |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 <아무튼, 하루키_이지수> (0) | 2020.10.08 |
나의 삶에서 확실한 것은 내가 죽는다는 것 :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2) | 2020.09.28 |
사법고시는 옳고 로스쿨은 옳지 않다? : 책 <당선, 합격, 계급_장강명> (0) | 2020.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