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독서가

나의 삶에서 확실한 것은 내가 죽는다는 것 :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구새주 2020. 9. 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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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장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무언가를 반드시 이룬다는 보장도 없고, 어떤 걸 가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 와중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스러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동료인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이들이 맨 먼저 보인 반응은, 저마다 속으로 그의 죽음으로 발생할 자신들의 자리 이동이나 직위 변경에 대해 미리 계산하고 따져보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듣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절친했던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친구가 죽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함께 느꼈던 것이다.
  ‘세상에,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나서야 겨우 숨을 거두다니! 사실 언제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나한테 똑같이 닥칠 수 있는 일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찌 된 조화인지 거의 동시에 ‘이건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한테 일어난 일이 아니야.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또 나한테 일어날 리도 없어.’ 라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다. 주변에서 죽음을 겪어본 일도 드물었다. 기사로 쏟아지는 수많은 죽음을 보며 '그래 뭐 사람은 죽는거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정도만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키제베터의 논리학에서 배운 “줄리어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라는 유명한 삼단논법의 일례가 카이사르에게나 해당하는 진리였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말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자기 자신은 카이사르가 아닐 뿐더러 일반적인 인간도 아니었다. 이반 일리치에게 자기 자신은 언제나 아주 특별한,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른 전혀 다른 그런 존재였다. 그랬다, 카이사르는 인간이었고 인간인 그는 죽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나, 바냐, 이반 일리치에게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지는 바로 아닌 내가 죽는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의 죽음이라면 어떨까?


지나가는 행인들 모두, 그들의 삶에선 그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일 것이고 그런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정도 죽음에 가까운 연령대가 되지 않는 이상 모두들 생각할 것이다.

 

'내가 죽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던 예전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 보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때는 죽음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고, 감싸 주고, 죽음의 인식마저 파괴해 주던 예전 것들이 이제는 전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중략) 그는 혼잣말로 “그래, 일이나 하면서 사는 거야. 사실 나는 일 때문에 살아왔잖아.”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의혹들을 떨쳐 내며 법원으로 출근했다. (중략) 하지만 재판 도중에도 통증은 어김없이 옆구리에 찾아들었고, 재판이 진행되든 말든 전혀 아랑곳없이 빨아들일 것 같은 고통을 주며 그를 괴롭혔다. (중략) 순간 그는 몸이 차갑게 얼어붙으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다시 ‘정녕 죽음만이 진실이란 말인가.’ 라고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이반 일리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종류의 위안거리와 방어막을 찾아 나섰고, 새로 찾아낸 방어막이 그를 구원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 방어막은 이내 망가져 버렸다. 아니 망가졌다기보다는 투명해져 버렸다. 모든 것을 꿰뚫고 치고 들어오는 죽음을 막아설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럼 죽음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건 무엇일까?

이반 일리치는 판사였다.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평범한 4인 가족을 이루고 있었으니 나름대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반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어느 것도 죽음을 가리워줄 수는 없었다.

 

  이반 일리치를 가장 견디기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거짓이었다. 무슨 까닭에선지 모두가 공인한 거짓, 그는 병을 앓고 있을 뿐이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을 편히 가지고 치료만 잘 받으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그 거짓을 견뎌내기가 그에게는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별별 짓을 다 한다 해도 이제는 갈수록 심해지는 고통과 죽음 외에는 다른 어떤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거짓말이 괴로웠고, 사람들이 자기네들은 물론 그 자신도 알고 있는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절망적인 상태에 대해 속이려 들고, 또 그 속임수에 그 자신마저 가담하기를 강요하는 것 또한 그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었다. 거짓말이, 죽음을 눈앞에 둔 그에게 사람들이 쏟아내는 이 거짓말이, 자기네들의 친목 방문이라든지 커튼이라든지 식사에 나오는 철갑상어 고기라든지…… 따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이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는 소름이 끼치도록 두렵고 싫었다.  
  그는 자신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죽음의 의식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우연하게 발생한 하나의 불쾌한 사건으로, 꽤나 거북살스러운 일의 수준으로 형편없이 끌어내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그를 진심으로 가엾게 여기는 사람 또한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의 전체적인 흐름에 크게 영향을 주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맘에 들었던 구절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서술하는 방식이 굉장히 맘에 든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가 자신에게 말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나 스스로 망쳐놓았다는 생각을 가진 채, 또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도 없이 눈을 감아야 하는 거라면 그땐 정말 어떻게 되는걸까? 그는 똑바로 누워 자신의 일생을 새로운 눈으로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하인에 이어서 아내, 그리고 딸, 마지막으로 의사가 차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 한명 한명이 보여준 모든 행동과 그들 한명 한명이 내뱉은 모든 말들은 지난 밤 비로소 그에게 실체를 드러낸 끔찍한 진실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와도 같았다. 그는 그들 안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삶의 '수단'으로 삼았던 모든 것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으며, 그것들은 또한 삶도 죽음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거대하고도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똑똑히 알게 되었다.  




결국 인간은 죽는 존재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우리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 앞에서는 그야말로 목숨걸고 사수했던 물질적, 사회적 가치도 무의미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애버리지는 말자. 현생이 슬퍼지니까. 결국 그 사이의 줄타기를 잘해야 되지 않나, 싶다. 멋지게 말하자면 균형이다.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위한 일과 존재로서의 나 사이의 균형을 잘 잡는 것.

단순히 '잘 사는 법' 은 와닿지가 않았다면, 극단적이지만 (사실 극단적이지 않다.) '잘 죽는 법'이라고 생각해보자. 내가 어떤 식으로든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후회가 덜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회인으로서의 나와 자연인으로서의 내가 적당히 공존해야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사회인으로서 성공하는 법, 아니 어느정도 자리 잡는 법은 많다. 결국 내가, 우리가 고민해야되는 부분은 어떻게 잘 '존재'할 것인가 아닐까.



지은이: 레프 톨스토이
정리 날짜: 9월 2일

 

 

 
이반 일리치의 죽음
톨스토이의 중ㆍ단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이반 일리치의 죽음』. 고통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허무함을 주제로 한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 소설은 냉정한 사실주의적 묘사와 심리적 통찰력이 돋보인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권위와 명예와 부를 지니고 있던 이반 일리치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으로 시작된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 병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사랑이 삶의 유일한 규범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죽음 역시 우리 삶의 범주에 포함된 하나의 요소이자 삶의 긍정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키는 장치임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이반 일리치의 죽음』외에도 죽음에 관한 주제를 다룬 〈세 죽음〉과 〈습격〉이 담겨 있다. 〈세 죽음〉은 귀족 부인, 늙은 농부, 나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생명이 있는 존재가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전장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습격〉은 전쟁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전쟁의 영광에 의문을 제기하는 톨스토이 후기작들의 토대가 된다. ☞ 시리즈 살펴보기! 세계적인 작가들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고전 문학 시리즈「펭귄클래식」한국어판. 충실한 원본을 토대로 소개하고,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자 및 현대 주요 작가들이 직접 쓴 서문을 함께 실어 전문성을 갖추었다. 또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별하되,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저자
레프 톨스토이
출판
웅진씽크빅
출판일
200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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