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독서가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2020 BEST 책추천)

구새주 2020. 10.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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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불안과 고독, 우울과 무기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이데거는 현대사회의 위기를 직시하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길을 사유하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친 사상가다. 하이데거는 우리 삶이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자연과 사물 등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경이와 기쁨을 느끼는 인간 고유의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이데거 철학의 대표적인 권위자인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는 강의 형식의 친절한 설명과 신뢰감 있는 정교한 해설을 통해 하이데거 철학의 정수를 소개한다. 공허하고 삭막해져만 가는 삶의 문제들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이 책을 통해 분주한 삶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저자
박찬국
출판
21세기북스
출판일
2017.09.20

 

[과학과 기술에 대한 우상숭배]

하이데거는 현대의 과학과 기술이 단순히 도구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오히려 현대인들은 과학기술을 도구로 보는 것을 넘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과학과 기술이 이미 일종의 종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묻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현대의 과학과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연은 물론 인간의 삶 전체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방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신에 대한 신앙이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했던 서양의 중세시대를 기독교 시대라고 부르듯, 과학기술시대라는 표현은 근대적 과학과 기술이 우리 삶을 철저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일종의 신적인 존재가 되었고, 현대는 종교와 가장 무관한 시대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가장 종교적인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기술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현상을 가리켜 에리히 프롬은 ‘산업 종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왜 이토록 공허한가]

‘존재가 존재자에게서 빠져 달아나버렸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우리의 일상적 삶이 잡담과 호기심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타인에 대한 비교의식에 일상적으로 사로잡혀있는 우리는 세간적인 가치들을 중심으로 하여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고 규정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우리는 일상적으로 격차에 대한 우려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비교의식이 일상을 지배함에 따라 타인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권태를 메우는 수단이 되거나 다른 사람의 흠을 들추어 그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호기심이 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간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바쁘게 살지만 정작 마음 밑바닥에서 우리는 이러한 삶에 대해 염증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을 밀어내기 위해 우리는 호기심에 차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쫓아다니고 그 과정에서 맛보게 되는 긴장과 흥분으로 허한 마음을 메우려 합니다

이렇게 호기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는 그 어느 것에도 깊은 애정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도처에 있으면서도 아무 데도 없고, 그 어디에도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모든 것을 항상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갑니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호기심에 사로잡힌 삶은 ‘고향을 상실한 무정주성’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호기심과 잡담은 나름의 흥분과 긴장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으로 생생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근본기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항상 기분 속에서 존재합니다. 서양의 전통철학에서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며, 기분이나 감정은 세계와 사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인간은 항상 어떤 기분 속에 존재하고, 기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기분은 대게 무덤덤하고 밋밋하기에 우리는 자신이 항상 기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덤덤하고 밋밋한 기분도 기분입니다.

사물들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일하는 로봇처럼 사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물들의 고유한 존재를 드러내면서 그러한 존재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에 의해서만 삶에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은 본래 시인이며 시인으로서 지상에 거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인으로 거주하지 않고 단순히 과학자나 기술자로만 존재하는 한 인간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삶에 대한 공허감과 권태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비와 오락 그리고 향락에 탐닉하지요.

하이데거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가 이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것을 경이로운 것으로 느끼고 그것들을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인간은 왜 불안을 느끼는가]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단순 소박한 사물들을 경이롭게 볼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우리는 일에 쫓기며 살고 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극적인 오락과 향락을 통해 빨리 씻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얼른 스트레스를 풀고 일에 몰두해야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바심을 내면서 살다 보니 하이데거의 말은 지나치게 한가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이라는 기분을 어쩌다 우연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을까요? 하이데거는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 더 나아가 죽음은 언제라도 우리를 엄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경이라는 기분을 갖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간 안주해왔던 일상적 세계는 불안이라는 기분을 통해서 그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동안 친숙했던 세계가 이렇게 의미를 잃고 무너질 때, 우리는 고독한 단독자로서 자기 앞에 서게 됩니다. 세간의 가치들에 대한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 우리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가 충만하면서도 고귀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의 고유한 존재를 환히 드러내 주면서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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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찬국
읽은 날짜: 20년 7월
정리 날짜: 20년 8월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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