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독서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대하여 :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1)

구새주 2021. 7. 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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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친 20세기의 지성으로 유명한 러셀이 쓴 단 한 권의 행복론. 행복이란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는 러셀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은, 행복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 정도로 불쾌한 인간의 여러 속성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러셀 특유의 명쾌한 답면으로 인생의 의미와 지향을 제시함으로써, 한없이 약하면서도 한없이 위대한 인간을 읽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인간이 불행을 느끼는 일상적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 극복 방안을 제시한다. 러셀이 생각하는 행복의 비결을 다룬 2부에서는 삶에 대한 열정과 폭넓은 관심을 강조하고, 사랑의 신비, 일의 소중함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가족에 대한 분석에서는 저자 특유의 통찰력이 빛난다.
저자
버트런드 러셀
출판
사회평론
출판일
2005.01.05




지금 나는 삶을 즐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삶을 즐기게 된 주된 비결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였다는 데 있다.
나 또한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 결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랬으니 나 자신을 불행한 괴짜로 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차차 자신과 자신의 결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자신에 대한 관심은 어떤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기껏해야 일기 쓰기에 매달린다거나, 정신분석을 받으러 정신과에 다닌다거나, 승려가 되거나 할 뿐이다.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바람에 불행해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적인 훈련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사람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세 가지 유형으로 죄인,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 그리고 과대망상에 걸린 사람을 들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죄인'은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죄인은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탓한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과 마음속의 자아상이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비록 이런 죄의식은 잠재의식 속에 갇혀있기는 하지만, 모든 일에 흥미를 잃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렸을 때 배운 모든 금지 사항들을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금지 사항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자제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면서 자신이 타락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도덕'의 희생양이 된 사람이 행복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에 가졌던 신념과 애정의 폭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불행의 심리적인 원인은 다양하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 전형적인 형태의 불행한 인간은 어린 시절에 정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 불행한 사람들을 혼히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어떤 만족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기분전환만을 추구한다. 무엇에든 취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망각상태가 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행복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죄의식 안에는 절망감과 자존심을 갉아먹는 감정이 존재한다.

죄의식은 바람직한 생활의 원동력이 못한다. 실제로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불행하다.

조화를 이룬 인격은 바깥을 향하는데, 자기 성찰의 시간은 고쳐야 할 질병인 자아몰입의 기회를 늘리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자신이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에 대해서 확고한 결심을 세움으로써 근거 없는 비합리적인 생각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출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생각에 단 한순간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는 순간에 자신을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단호한 설득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성공할 것이다. 따라서 조화로운 인격을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자아가 분열되어 있는 사람은 자극과 오락거리를 찾게 된다. 그는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지만, 건전한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감정이 순간적으로나마 자신을 내면에서 벗어나게 하고, 고통스러운 생각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열정은 모두 도취의 한 형태이며, 그는 근본적으로 행복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도취의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심각한 병적 증상이다. 이런 병이 없는 사람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면서 최대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정신이 최고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적은 순간에 사람은 가장 강렬한 기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참된 행복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뭔가에 도취해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거짓된 행복이며, 충족감을 줄 수 없는 행복이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충족감을 주는 행복감이다.



위 내용은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1, 7장을 발췌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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