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독서가

행복의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구새주 2020. 10. 1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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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 이미지와 우리 세대의 삶]


우리 세대는 어느 순간부터 묘한 환각에 시달려왔다. 나는 그 환각의 이름을 ‘상향평준화된 이미지’라 불러왔다. 우리 세대는 최악의 양극화에 시달리는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준화된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 이를테면 한편에는 학자금이라든지, 장래 얻게 될 아파트라든지, 이미 공고해져버린 상류층에서의 삶이 보장된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반대편에는 학자금 대출을 짊어지고, 서울 진입은 인생의 시작부터 난관이고, 결혼과 출산은 아득한 현실로만 느껴지는 누군가가 있겠지만, 두 사람이 누리는 삶에 묘한 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세대라면, 이 시대의 청춘이라면 마땅히 누리는 것들, 이른바 '핫한' 것들을 향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를 가장 깊은 우울로 떨어뜨리는 때는 언제일까. 그 것은 내 삶에 어떠한 화려한 이미지도 없는데, 가까운 친구들의 SNS나 프로필 사진 등이 온갖 화려한 이미지들로 치장되어 있는 걸 볼 때일 것이다. 그런 사진 같은 것을 볼 때 급속도로 우울한 마음이 들고, 스스로도 어서 그러한 ‘이미지’에 속하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삶을 선택한다는 관점]


우리는 소비자로 자랐고, 세상은 우리가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중요한 것은 제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훌륭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어느 때건 즉각적으로 ‘행복의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분열로]


상향평준화된 이미지 혹은 환각 이미지 속에서의 삶이란 분명 우리 세대가 지향하는 삶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도 완전한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삶은 누린 다음에는 증발해버리는 삶, 하나를 좇고 나면 금세 다른 것을 좇아야 하는 삶, 하나의 이미지를 얻고 나면 다시 다른 이미지를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다.

내 삶의 주된 시간이란 대부분 그런 ‘이미지’가 없는 삶이고, 그저 잠깐잠깐만 그런 이미지를 누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삶의 대부분은 무미건조한 회색 권태로 뒤덮여 있고, 술을 마시는 순간에만 웃을 수 있는 어느 노동자의 모습을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다.





[선의의 공동체를 꿈꾸며]


우리의 삶은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쌓아가는 과정 같지만, 실은 더 많은 결핍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 결핍의 홍수 속에서, 누가 더 자신을 가까스로 유지하는가 하는 경쟁이다.

다들 열심히 머리를 굴려 인생을 고민한다지만, 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선의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극복해야할 것은 선의를 미루고 있는 현재일 뿐이다.



저자: 정지우
읽은 날짜: 3월
정리 날짜: 10월 18일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대학 시절 《청춘인문학》을 내놓으며 집필활동을 시작해, 《분노사회》 《삶으로부터의 혁명》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등 10여 권의 책을 쓴 문화평론가 정지우가 밀레니얼 세대를 주제로 첫 사회비평 에세이를 내놓았다. 지금껏 기성세대에 의해 주도되어온 ‘청춘 담론’이 여전히 청춘의 실제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87년생 작가가 직접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책뿐만 아니라 신문 칼럼, 팟캐스트, SNS, 다양한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동시대 청년들과 활발히 소통해온 작가가, 자기 세대의 가장 내밀하고도 절실한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를 ‘시소의 세계관’을 가진 ‘환각의 세대’라고 정의하며, 청년의 시선에서 이제껏 없었던 구체적이고도 깊이 있는 ‘밀레니얼 담론’을 만들어낸다. 작가이기 이전에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으로서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섬세한 글쓰기로 진실하게 담아냈다.
저자
정지우
출판
한겨레출판사
출판일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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