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독서가

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 책 <빅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구새주 2021. 2. 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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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빅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해설이 있다! 는 책 홍보를 보고 후다닥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도서관은 희망도서를 잘 허락해 줍니다.)

 

기다렸다가 읽은 결과 :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흡입력이었다.

사실 묘사가 많으면 훌렁훌렁 읽어버리고 줄거리를 쫓아가기에 바쁜 타입입니다만 빅슬립은 묘사가 굉장히 많은 편인데도 꽤 괜찮았습니다.

그가 그리는 상황 속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대신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에 거의 러시아 소설에서만 느끼는 어라…. 이 녀석 누구더라하고 페이지를 앞으로 넘기게 되긴 한다.

 

 

 
빅 슬립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이란, 말하자면 도스토옙스키와 레이먼드 챈들러를 하나로 합친 것 같은 작품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내 결승점인지도 모른다. _무라카미 하루키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대표작 『빅 슬립』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1번으로 출간된다. 챈들러가 창조한 탐정 ‘필립 말로’는 미국 대중문화에 하나의 새로운 원형을 만들어냈다. 챈들레스크(Chandleresque)라는 단어까지 생길 정도로 특징적인 그의 문체는 하드보일드 장르의 토대가 되었으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을 만들어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챈들러를 두고 자신의 영웅이라 부르면서 언제나 그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작가로, 이 책에는 하루키가 『빅 슬립』을 일본어로 번역한 후 쓴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챈들러를 존경하는 한 명의 팬이자 그의 작품을 옮긴 번역가로서, 챈들러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저자
레이먼드 챈들러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0.10.08

 

 

 

특이하다고 할 만한 점은 추리소설인데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는 것.

 

셜록 홈즈를 볼 때는 '범인이 누굴까'에 흥분해 책장을 넘겼다면, 여기서는 필립 말로 (빅슬립의 주인공이자 탐정) 의 다음 행동이 궁금했을 뿐이다.

 

순간순간 재밌었는데, 서사에 이입되지는 않았다고 해야 되나. 그게 나쁜 의미는 아니고 새로운 경험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음... 이건 왜 유명한거지...?

 

 

그런데 개인적으로 소설은 늘 이런 거 같다. 다 읽은 후에 이게 왜 유명한 걸까?’하는 궁금증이 강력하게 뿜어져 나온다.

 

그래서인지 소설은 뒤에 해설이 붙은 걸 좋아한다. 없으면 서운. 시대상을 반영한다던가, 그 당시에 새로운 반향이었다던가라는 건 책의 알맹이만 읽고는 알 수 없기에  오오 이런 점에서 대단한 거군~’ 하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빅슬립도 좀 읽다가(하암...) 해설 읽고(오오!), 다 읽은 뒤(뭐야...) 다시 해설을 펼쳤다(아하!) , 이게 학습지 답지를 베끼는 그런 것은 아니겠죠.

 

 

필립 말로는 상황을 추리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일단 몸부터 움직인 다음 그러고 나서 다소 억지스럽게 추리한다. 그러므로 그 추리에는 썩 열의가 담기지 않고, 많은 경우 정합성과 명료성이 결여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챈들러의 소설세계다. 우리는 우선 필립 말로의 움직임에 시선을 뺏긴다. 그리하여 그 움직임을 쫓는 사이 소설의 율동에 점차 빨려 들어가고, 이윽고 줄거리의 정합성 따위 딱히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필립 말로라는 인물이 발휘하는 정합성인 셈이다.

by.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챈들러의 작품세게에서 스토리는 그릇에 불과하다. 독자가 줄거리보다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등장인물의 심리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다움에 관하여 사색하도록 만드는 힘, 그것이 챈들러의 매력이고 필립 말로의 매력이다.

by. 김진준 (옮긴이)

 

 

'이게 왜 대단한 작품일까?'라는 화두를 가지고 해설을 다시 읽었을 때, 양동이에 받아놓은 잔잔한 물에 물방울 하나가 탁 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하! 아하! 아하 moment

 

 

 

여태껏 나는 소설을 어떻게 대했는가?

 

어떻게 보면 챈들러의 시대에 유행했던 펄프 잡지를 읽는 정도의 마음, 요즘의 시대에 빗대자면 그냥 짧은 유튜브 영상 보듯이, 인스타그램 피드 읽듯이 봤다.

 

빠른 자극!

 

그게 내가 소설에서 얻고자 하는 전부였다.

 

수많은 글자 중에 섬세한 묘사는 빠르게 삭제시켰다. 줄거리만을 골라 읽어가며 그 줄거리가 허망할 때 역시 소설은…’ 하며 나의 일반화를 확립시켜 나갔다.

 

‘이래서 소설은 별로야. 추리소설은 재밌긴 재밌는데, 고전 명작은 뭔 재민지 모르겠단 말이야.’

 

 

이 책에 하루키의 해설이 있답니다.

 

 

그런데 나는 왜 빅슬립에서는 묘사를 삭제시키지 않았는가?

그게 이 책이 유명해진 부분이지 않을까.

 

과하지 않고 역하지 않은 묘사, 줄거리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의 공간의 공기가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설명이 자연스럽게 독자인 나를 흡입했다.

 

 

그래서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에 대해서는 대충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

 

>> 우리의 삶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듯, 소설 안에서 일어난 줄거리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마음으로 읽어보기.

>> 인물과 배경을 묘사하는 대로 받아들여보기.

>> 너무 다 이해해서 파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읽어보기.

 

아무튼 저에게 소설은 아직까지는 어려운 존재기는 하지만요.

 

 

 

[독서노트]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 책 <아무튼, 하루키 / 이지수>

 

[독서노트]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 책 <아무튼, 하루키 / 이지수>

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애초에 소설을 많이 읽지도 않았거니와 성적 대상화가 많은 건 딱 질색이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유명한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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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슬립은 작가의 첫 정식 작품인데(잡지 기고 제외), 데뷔했을 때 나이가 51세라고 한다. 역시 세상은 젊은 천재에 환장하지 늙은 성공은 별로 환호하지 않는다니까. 뭐… 나만 이제 안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대기만성의 사례로 적립해 두겠습니다.

 

 

 

 

읽은 날짜: 11/10, 24

정리 날짜: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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